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5.18 민주화운동/학살 (문단 편집) == [[전라남도청|전남도청]] 앞 집단발포 이전 == {{{#!folding ※ 5월 18일 부상자 사례 : 보기 / 접기 ||<-4> ''5월 18일 부상자 사례''[* 아래의 표에 나오는 사례들은 [[평화민주당]]에 접수된 「피해자 신고서」 중 시간이나 부상 경위가 확실한 사례들만 수록하였다.] || || 번호 || 성명 || 성별(연령) || 부상 경위 || || 1 || 이종남 || 남(27) ||오후 4시 50분경 공용터미널 부근 대한극장 옆에서 공수에 무차별 구타를 당해 두피부 열상, 우측 수부 하퇴부 좌상 및 찰과상, 우측 제5중수골 골절로 4개월여 치료 || || 2 || 이종안 || 남(25) ||12시 넘어 관광호텔 근처 상점에서 보험계약 중 공수 3명이 곤봉과 개머리판, 군화발로 구타 및 연행, 통합병원 후송 치료 중 5월 25일에 후방됨 || || 3 || 김명호 || 남(44) ||저녁 7시 30분경 남동 80-2 소재 저택에 있다가, [[M16 소총|M16]] 착검 상태의 공수가 문을 부수고 침입하고 개머리판으로 후려 전신 구타. 피신학생 찾는다고 유리창, 문을 박살내는 등의 재산피해도 입음 || || 4 || 이근재 || 남(58) ||도청→중앙초등학교 후문 쪽으로 가는데, 후문 담벽에서 공수가 여학생 여러 명의 상의를 벗기고 구타를 가하자 이에 항의하다가 무차별 구타당함 || || 5 || 김영철 || 남(32) ||저녁 8시경 버스가 다니지 않아 도보로 귀가 중에 [[MBC]] 부근에서 공수에 의해 무차별 구타를 당함 || || 6 || 김규진 || 남(50) ||오후 3시경 가톨릭센터 앞에서 공수에 허리를 발로 채이고 개머리판으로 맞는 등의 전신 구타를 당해 앞니 4개가 빠지는 등의 부상을 입음 || || 7 || 김남일 || 남(48) ||오후 3시경 광주공원 부근에서 공수에 구타당해 우척골 골절당하고 연행되었다가 5월 20알에 통합병원으로 후송됨 || || 8 || 김대호 || 남(28) ||독감으로 통원 치료를 다니던 중 귀가 차편이 막혀 친구집에 머무르고자 버스를 타고 가는데, 공수가 최루탄을 쏘고 차에 올라타 무조건 구타를 가함. 의식을 잃은 상태로 전남대학교와 광주교도소 등지로 끌려다니며 끝까지 구타를 당했으며 7월 3일 훈방됨 || || 9 || 김범동 || 남(34) ||오후 3시경 충장로5가 입구 [[중국집]] 주방장으로 일하던 중 한 여성이 공수부대에게 옷을 찢기면서 구타당하는 모습을 목격하다가 들켜 군인 수십여 명에게 집단 구타를 당함 || || 10 || 김태랑 || 남(39) ||오후 5시경 금남로5가 시위 중 게엄군에게 무차별 폭행을 당하고 연행되었으며, 신분 확인을 통해 통일당 당원임이 밝혀지자 고문까지 당하여 결국 척비뇨기 장애 등을 겪었다. 이후 1984년 6월 고문 후유증으로 사망함 || || 11 || 김정섭 || 남(35) ||동료 결혼식에 참석하고자 광주에 들린 후 귀가하려고 버스를 탔는데 공수에 의해 제지당해 버스가 멈춤. 그리하여 도보로 길을 걷다가 공수에 의해 갑자기 진압봉으로 머리를 맞고 쓰러짐 || || 12 || 김귀식 || 남(21) ||친구들과 여수로 여행을 갔다가 광주로 돌아오는 길에 통금이 연장됐다는 소식을 듣고 철로를 따라 도보로 귀가를 시도함. 귀가 도중 조선대학교 근처에서 공수에게 잡혀 2시간 가량 10여 명의 군인들에게 집단 폭행을 당함 || || 13 || 박병률 || 남 || 오후 2시경 광주일고 교정에서 구타당함 || || 14 || 박종화 || 남(20) ||고교생인 동생을 데리러 오토바이를 타고 광주에 왔다가 무등경기장 근처에서 공수에게 잡혀 구타당하고 3개월 동안 상무대에 잡혀 있다가 석방됨. 이후 정신이상 증세를 보이다가 사망함 || || 15 || 백흥남 || 여(35) ||가톨릭센터 앞에서 공수 5명에 의해 곤봉으로 머리 오른쪽을 가격당함. 이 일로 13바늘이나 꿰메는 등 심각한 부상을 입음 || || 16 || 양삼근 || 남(29) ||개인 용무가 있어 자전거를 타고 금남로를 지나가던 중 계엄군의 진압을 목격하고 인근 식당으로 피했으나 공수가 쫓아와서 구타를 가함 || || 17 || 양일준|| 남(29) ||오후 2시경 신안동에서 공수에게 구타당하고 연행됨. 이후 통합병원에 이송되어 한 달 정도 치료를 받음 || || 18 || 여호현 || 남(29) ||전남대학교 앞에서 공수 3~4명의 폭행으로 인해 실신하고 연행되었다가 5월 19일 통합병원으로 후송됨 || || 19 || 윤영철 || 남(31) ||오후 4시경 북동 소재 칠성당구장에서 놀던 중 갑자기 공수 10여 명이 난입하여 곤봉과 군홧말로 전신을 구타당하고 손에 채워놨던 시계도 약탈당함 || || 20 || 이승민 || 남(49) ||오후 2시경 본인이 경영하는 점포에 공수가 난입하여 구타를 당해 실신함 || || 21 || 이세진 || 남(18) ||광주일고에서 공원 쪽으로 가는 도중 광남로 사거리에서 공수 20여 명에게 쫓기다 골목에서 붙잡혀 구타를 당해 실신. 한일은행 사거리에서 20여 명이 실린 군용트럭에 실려져 조선대학교로 연행되었다가 통합병원으로 후송됨 || || 22 || 이재승 || 남(21) ||김귀식의 경우와 같음 || || 23 || 장한환 || 남(27) ||화물차를 운전하며 산수동 자택으로 귀가하던 중 밤 10시경 계림파출소 근처에서 검문을 받다가 공수에게 폭행을 당함. 이에 항의하자 더 심한 구타를 당하여 결국 실신한 채로 연행되었다가 통합병원으로 후송됨 || || 24 || 장성암 || 남(23) ||오후 2시경 수창국민학교와 공용터미널 사이에서 공수 7명에게 집단구타를 당하고 실신 || || 25 || 정영욱 || 남(21) ||오후 12시~1시경 친구 집에 놀러갔다 온 후 친구들과 함께 조선대학교 정문을 통해 학교로 들어가려다 공수에게 걸려 구타를 당함 || || 26 || 조갑태 || 남(16) ||오후 5시경 바깥이 시끄러워 밖으로 나갔다가 금남로 부평약국 앞에서 공수 2명에게 집단으로 구타를 당함 || || 27 || 한광진 || 남(29) ||금남로3가 광주은행 본점 앞에서 공수에게 군홧발, 진압봉 및 총개머리판, 각목 등으로 전신을 구타당함 || || 28 || 하용만 || 남(34) ||금남로5가에서 건축미장 작업을 마치고 귀가하다가 오후 3시경 충장로4가 도로상에서 공수에 의해 이유도 없이 구타당하고 실신한 채로 트럭에 실려 연행됨 || || 29 || 김욱 || 남(22) ||금남로에서 공수에게 구타당하고 연행당함 || || 30 || 김막동 || 남(25) ||오후 3시경 예비군 훈련을 받고자 공용터미널에 가서 장흥행 버스를 타고 있는데, 갑자기 공수가 차 안으로 난입하여 끌어내고 진압봉으로 전신을 구타함 || || 31 || 나성길 || 남(22) ||오후 6시경 대인동 시외버스터미널 맞은 편 칠성당구장에서 당구를 치고 있는데 공수가 난입하여 무자비하게 구타함 || || 32 || 정건배 || 남(19) ||가톨릭센터 앞 동아극장 골목에서 공수에 의해 폭행당함 || || 33 || 조용철 || 남(24) ||한미제과 앞에서 공수에게 구타당하고 팬티만 입은 채로 연행됨 || || 34 || 박용기 || 남(22) ||오후 2시경 전남대학교 후문 입구에서 공수 3명에 의해 구타당하고 교내로 끌려갔다가 의식불명이 됨 || || 35 || 김현채 || 남(20) ||가톨릭센터 앞에서 공수에게 구타당함. 또 조선대학교 부근 친구 집에 갔다오다가 공수에 의해 철로에 끌려가 30분 정도 구타를 당함 || || 36 || 김병석 || 남(30) ||한국은행 앞을 걸어가다가 공수가 휘두른 총에 맞아 머리와 허리에 부상을 입음 || || 37 || 유병양 || 남(25) ||택시 운전사로 5명의 학생을 태우고 전남대학교 부근을 지나가다 임동 요한병원 근처에서 학생들을 구타하던 공수에게 걸려 검문을 받음. 검문 도중 공수들이 승객들을 무차별 폭행하자 이에 항의하다가 본인도 개머리판으로 후두부를 무자비하게 얻어맞고 결국 차량을 몰고 도주함 || || 38 || 하헌남 || 남(29) ||오후 8시경 금남로광주은행 본점 앞에서 귀가하던 중 공수가 휘두른 총검에 맞아 쓰러져 실신함 ||}}} {{{#!folding ※ 5월 19일 부상자 사례 : 보기 / 접기 ||<-4> ''5월 19일 부상자 사례'' || || 번호 || 성명 || 성별(연령) || 부상 경위 || || 1 || 성대수 || 남(44) ||동명동 동문다리 옆 자택에 대학생 2명이 피신했는데, 공수가 집에 쫓아들어와 피신한 학생은 물론이고 14살 사내아이까지 폭행하자 이를 만류하다 본인도 구타를 당함 || || 2 || 박대현 || 남(29) ||공용터미널 앞에서 계엄군이 학생들을 강경 진압하는 것을 보고 항의하다 곤봉으로 어깨 등을 심하게 구타당함 || || 3 || 박재덕 || 남(27) ||모터를 구입하고자 광주에 왔다가, 오후 2시경 시외버스터미널 앞에서 차량 안에 있던 것을 공수가 갑자기 끌고 내려와 곤봉으로 후려치고 웃옷을 벗겨 트럭에 싣고는 조선대학교로 연행함 || || 4 || 김종학 || 남(28) ||오후 3시경 양복점에서 일을 하다가 최루가스로 인해 작업을 종료하고 동료와 퇴근하던 길에 동아극장 길목에서 공수들에게 집단구타를 당하고 끌려가던 도중 실신함 || || 5 || 장막동 || 남(28) ||오전 12시경 충장로5가 입구에서 시위를 구경하던 중 공수 10여 명에게 집단구타를 당하고 실신 상태에서 끌려가 트럭에 실려 연행됨 || || 6 || 김재권 || 남(42) ||저녁 9시경 계엄군에게 쫓겨 금남로 소재 충금동 사무실 안으로 피신했는데, 뒤따라온 공수가 곤봉으로 무차별 난타하여 두부타박, 우측손 골절상을 입은 채로 겨우 피신함 || || 7 || 김동채 || 남(45) ||오전 10시경 상무관 앞에서 학생 4명을 태운 채로 택시를 운전하다 가톨릭센터 앞에서 공수에게 걸림. 공수가 차량을 파손하고 학생들을 구타하다 이에 분노해 항의하다 공수에게 개머리판으로 얼굴, 앞가슴, 허벅지 등 전신을 구타당함. 이 일로 치아 7개가 없어지고 전신에 타박상을 입음 || || 8 || 김영만 || 남(27) ||오전 11시 40분경 호남동 태평극장과 현대극장 사이에서 택시를 운전하던 중 공수가 차량으로 학생들을 못 붙잡게 방해했다는 핑계로 곤봉과 개머리판으로 무자비하게 구타를 가했으며, 더 이상 운전을 못하게 해주겠다면서 군화발로 손을 짓이겨 손가락을 더 이상 못 쓰는 중상을 당함 || || 9 || 신갑경 || 남(19) ||오후 1시경 가톨릭센터 근처에서 공수에 의해 머리가 여러 번 짓밟히는 등 구타를 당함. 이 일로 [[조현병|정신분열]] 증세를 일으켜 [[자해]]를 시도하다 오른쪽 팔이 절단되는 등의 피해를 입음 || || 10 || 김병렬|| 남(17) ||오전 10시경 미도장호텔 안과 현관에서 난입한 공수들에 붙잡혀 진압봉과 군화발로 무수히 구타당하고 금남로로 끌려가면서까지 폭행을 당해 복부와 머리가 깨짐. 구타는 호송차량 안과 연행된 곳에서도 계속됨 || || 11 || 김영대 || 남(23) ||위와 동일 || || 12 || 손병섭 || 남(26) ||위와 동일 || || 13 || 박필호 || 남 ||위와 동일 || || 14 || 김인윤 || 남(21) ||착검한 공수에게 쫓겨 공용터미널 안으로 숨었는데, 공수가 유리창을 부수며 쫓아와 칼로 얼굴을 찌르고 개머리판으로 후두부를 구타함 || || 15 || 김광영 || 남(30) ||오후 5시경 충장로2가에서 시위를 구경하던 중 공수에게 쫓겨 주변 건물 화장실로 피신했는데, 착검한 공수에게 들켜 무차별 구타를 당하고 옷을 벗기운 채로 끌려나와 폭행당하다가 간신히 도주함 || || 16 || 김영호 || 남(20) ||자전거를 타고 업무를 보던 중 광성여객 사거리에서 공수에게 구타당하고 옷을 벗겨진 채로 손을 뒤로 묶여져 금남로로 끌려갔다가 군용 트럭에 실려 조선대학교로 연행됨. 조선대학교 내에서도 심한 [[가혹행위]]를 당하다가 상무대로 연행된 후 나흘만에야 풀려남 || || 17 || 강성범 || 남(21) ||오후 2시경 고향 친구를 배웅하고 귀가하던 중 충장로5가 대도쇼핑 앞에서 공수가 이유 없이 연행하는 것에 항의하여 도망쳤다가 붙잡혀 집단구타를 당하고 연행됨 || || 18 || 김점중|| 남(21) ||오후 3시경 시위 도중 도주하다 광주일고 근처에서 공수에게 구두발과 곤봉으로 구타당함. 다행히 끌려가지는 않아 공수가 물러간 후 주변 시민들에 의해 구출됨 || || 19 || 김준헌 || 남(23) ||오전 8시 30분경 조선대학교에 갔다가 정문 앞에서 공수에 의해 총개머리판 등으로 구타를 당함 || || 20 || 김형영 || 남(20) ||조선대학교 부근에서 자취 중에 있다가 오후 1시경 예비군복을 입은 채로 자취방 근처를 돌아다니다 공수에게 들켜 무자비하게 구타당하고 실신함. 이 일로 정신분열증에 걸려 목포 애증원에 수용됨 || || 21 || 김이수 || 남(29) ||저녁 7시경 양복점에서 근무하다가 화장실에 다녀왔는데, 그 길에 붙잡혀 공수에게 곤봉으로 머리를 구타당하고 조선대학교로 연행됨. 이후 상무대에 3일 동안 구금되어 있다가 풀려남 || || 22 || 신정호 || 남(22) ||영광 원자력발전소에서 근무한 후 귀가하던 중 오후 7시경 문화방송 앞에서 공수에게 붙잡혀 곤봉과 개머리판으로 무차별 구타를 당함. 결국 이 일로 인해 정신분열증에 걸림 || || 23 || 안병조 || 남(47) ||오전 10시 30분경 도청 앞 관광호텔 앞에서 공수에 의해 곤봉과 개머리판으로 무차별 구타를 당함 || || 24 || 이용찬 || 남(20) ||오전 10시경 매형의 문병을 가기 위해 친구와 길을 가다가 공수와 대면하고 이를 피해 근처 제재소로 도망갔으나, 공수에게 붙잡혀 옷이 벗겨지고 집단구타를 당함. 이후 정신분열증에 걸림 || || 25 || 이정해 || 남(21) ||파편으로 인한 우측 눈 실명 || || 26 || 이진우 || 남(18) ||친구와 누문동을 통해 금남로로 가려다 상황이 심상치 않은 것 같아 공용터미널을 통해 가기 위해 북동 부근에 왔다가 공수 대여섯 명에 의해 집단으로 끔찍한 구타를 당함. 끌려가는 도중과 군용 트럭 안에서조차 계엄군의 구타가 이어짐 || || 27 || 임경택 || 남 ||대인동에서 식당을 경영하던 중 공수에 의해 무차별 구타를 당함 || || 28 || 이희승 || 남(25) ||오후 3시경 금남로에서 공수와 투석전을 벌이다 공수에게 쫓겨 충장로 입구에서 곤봉과 군화발로 구타당하고 실신하였다가 정신을 차리자마자 간신히 도주함 || || 29 || 정창연 || 남(42) ||오후 3시경 금남로2가 가톨릭센터 앞 노상에서 공수에 무차별 구타를 당해 전신에 타박상을 입음 || || 30 || 조기오 || 남(53) ||오후 4시경 도청 부근 상업은행 앞에서 공수에 곤봉으로 얼굴, 손, 등골 등을 얻어맞아 전치 6개월의 부상을 입음 || || 31 || 최승기 || 남(20) ||오후 3시경 대인시장 부근 사거리에서 시위를 하다 공수에 의해 진압봉과 개머리판으로 전신을 구타당하고, 대검으로 오른쪽 다리 두 군데를 찔림. 폭행 이후 조선대학교 체육관으로 연행되었으나, 심각한 상해로 인해 빈사 상태에 이르자 군인들이 한 운전사에게 통합병원 영안실로 데려갈 것을 지시함. 그러나 운전기사가 조선대학교병원 응급실로 이송하는 바람에 겨우 생환함 || || 32 || 한일남 || 남(42) ||밤 10시~11시경 노동청 앞에서 시위를 관전하던 중 돌진하는 공수부대 장갑차를 피해 골목으로 피신했으나, 공수에게 붙잡혀 머리, 어깨, 갈비뼈 등을 얻어맞고 실신함 || || 33 || 한창우 || 남(20) ||오후 6시경 광주공원에서 공수에게 곤봉 등으로 전신을 구타당하고 적십자병원에 2개월 정도 입원함 || || 34 || 이강태 || 남(20) ||회사에서 비상근무를 마치고 귀가하던 중 공용터미널에서 학생 같다는 이유로 전신을 구타당함. 이에 분노하여 이후 시위에 참가하였다가 붙잡혀 상무대로 연행됨 || || 35 || 염성순 || 여(20) ||고향에 가기 위해 공용터미널에 갔다가 길이 막혀 서성거리는 차에 공수에 의해 얻어맞고 실신함 || || 36 || 최석필 || 남(26) ||공용터미널 사거리에서 시민들이 연행되는 것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공수가 곤봉으로 구타를 가해 허리를 다침 || || 37 || 성무원 || 남(35) ||오후 4시경 충장로의 한 다방에 의자를 납품하고 돌아오는 길에 시위대에 휩쓸려 광주은행 본점 옆 차고에 잠시 피신해 있던 차에 공수에게 들켜 옷이 벗겨지고 팬티만 남은 채로 무차별 구타를 당함 || || 38 || 송도연 || 남(22) ||오전에 한일은행 입구에서 공수 4명이 아무 이유도 없이 머리 등을 곤봉과 군화발로 무차별 구타를 가함 || || 39 || 지정원 || 남(25) ||오후 6시경 현대극장 앞에서 공수들에게 붙잡혀 포승줄에 완전히 묶인 채로 구타를 당함. 이후 도주를 시도하다 붙잡혀 또 다시 공수들에게 집단구타를 당함 || || 40 || 임찬덕 || 남(26) ||오전 11시경 무등고시학원에 있는데 공수가 난입하여 건물 밖으로 끌고 나와 무차별 구타를 가함 || || 41 || 이길수 || 남(20) ||저녁 7시경 군인들을 피해 신안동 자택으로 피신했는데, 공수가 유리창을 박살내며 난입하여 몽둥이로 때리고 발로 참 || || 42 || 최용범 || 남(20) ||오전 10시 30분경 무등고시학원 2층 강의실에 있다가 건물 안에 난입한 공수에 의해 폭행을 가해 실신한 채로 연행됨 || || 43 || 이인선 || 남(27) ||밤 12시경 전남대학교 후문 쪽으로 미니버스를 운전하는데, 공수가 붙잡아 곤봉을 전신을 구타하고 대검으로 안면을 찌름. 이로 인해 치아가 부러지는 등 전신에 부상을 입고 전남대학교 이학부 건물에 수용되었다가 광주교도소로 이송되어 7월 말에 훈방됨 || || 44 || 김용운 || 남(24) ||밤 9시경 중흥동 저울공장에서 근무 중 군인들을 피하는 시민들이 공장 안에 들어왔는데, 이로 인해 뒤따라온 공수에게 붙잡혀 구타당하고 노상으로 끌려나가 밤 12시까지 구타당한 후 겨우 풀려남 || || 45 || 최철진 || 남(31) ||오후 2시경 가톨릭센터 건너편 제일은행 앞에서 공수에게 쫓기다 곤봉으로 목덜미를 얻어맞고 실신함 || || 46 || 심경섭 || 남(22) ||밤 8시경 8톤 트럭을 몰고 광주로 들어왔는데, 신안동 롯데제과 앞에서 부상당한 청년 2명이 군인이 없는 곳으로 태워달라며 통사정하자 이를 태워주었는데, 공수의 진압 작전이 심해지자 청년들이 차에서 도주함. 그러자 공수가 쫓아와 곤봉으로 왼쪽 어깨 위와 등을 구타하여 실신함 || || 47 || 김윤수 || 남(28) ||정오경 광주일고 쪽에서 공용터미널 방향으로 가는데, 공수가 총개머리판과 군화발로 구타함. 포승에 묶여 연행되기 전 극적으로 풀려남 ||}}}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